기계과에서 전자과로 전과해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교수님. 요즘 계속 머리속에 맴도는 고민이였는데 오늘 유독 우울할 정도로 커져서 이렇게 말해봅니다.
지금이라도 기계과에서 전기전자로 과를 옮기는 것이 좋은 선택일까요? 기계 전망이 어둡다, 요즘 기계 다 망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너무 많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저희 학교는 무학과로 입학하여, 처음 들어오면 기초과목들을 수강하고 이후 과를 정합니다.
여기서 프로그래밍 수업을 들었을 땐, 너무 힘들었던 경험이 있어서 컴공은 생각도 안하고 있었고 취업 잘되는 과(제가 15학번인데 이때 당시는 전,화,기 이렇게 3대장이였는데)라는 기계과를 고르게 되었습니다.
근데 전공 들어오면서 어려워진 난이도에 갈팡질팡 헤매다가 군대를 다녀오고 뒤늦게 교수님 강의를 만나 역학의 재미를 느끼면서 공부하고 기계과 안에서 세부진로도 정하면서 이제 제법 미래를 그려나가는 듯 하였습니다.
그러다 작년 하반기부터 휘청하더니 코로나까지 더해져서 기계가 많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보고, 들으니까 우울하네요.. 지금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하는 이 노력이 나중에 보상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드니까 두렵기도 하고요.
과 변경이 자유로운 학교이다보니 전과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졸업이 1년 늦어지게 될 것 같습니다. 현재 3학년입니다.
근데 또 걱정되는 건 제가 군대가기 전에는 기계가 유망하고 컴공은 코딩노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살았는데 전역하고 얼마 지나지않아 기계가 망하고 컴공,전전이 핫한 시대를 살고 있더라고요.. 제가 전전으로 바꿔서 진로를 다 잡을때 쯤 다시 이 트렌드가 바뀌면 또 어떡하나 싶고..
교수님이 올려주신 기계과 전망에 대한 멘토링 영상도 보고, ‘어딜 가건 내가 열심히 하면 되지. 그래도 공대에서 취업률3등 과인데.’라고 생각하며 마음 잡으며 공부중인데도 자꾸 머리속에 고민이 맴도네요.. 아무 말이나 조언 좀 들을 수 있을까요?

답변

질문을 들으면서 제가 과거에 대학원 선택으로 잠 못 들던 밤들이 생각났습니다.

당시에 현대 중공업에 다니면서 석사를 나온 동기 형들을 만나면서 대학원에 대해서 처음 알게된 것 같습니다. 늦어도 참 많이 늦었었죠. 경력도 인정되고 연구직을 할 수 있는 대학원이 그땐 참 좋게만 보였습니다.

마침 현대자동차 계약학과가 학생을 모집하고 있었고, 저는 퇴사하여 계약학과에 지원했고 합격했습니다. 다만 계약학과는 석사 졸업 후 무조건 회사에 일을 하는 조건이 있기 때문에 나중에 박사과정에 진학할 경우의 수도 준비해야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전자과 교수님께 찾아가 계약학과를 포기하고 일반 대학원 석사로 입학하고 싶다고 말했었죠. 교수님께서는 절 좋게 봐주시고 허락해주셨는데, 갑자기 그 날부터 힘든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내가 과연 전자과에서 석사를 할 수 있을까. 학부와 다른 전공으로 진로를 잘 계획할 수 있을까. 내가 너무 무리한 결정을 한 것은 아닐까. 학생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잠도 못 자고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꼬였을까. 그냥 회사에 가서 열심히 일하면서 월급 받으며 살면 됐었는데 왜 나는 굳이 잘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이런 무리한 결정을 하게 됐을까. 하지도 않던 모든 고민들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저는 겁을 먹고 결국 전자과 교수님께 전자과 대신 기계과에 지원을 해야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전자과 교수님께서는 아직 대학원 지원 마감 전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셨지만 “나이값을 못한다”는 그 한 마디는 아직도 저를 많이 아프게 합니다. 저는 결국 기계과에 지원했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제주도로 10일간 혼자 여행을 갔습니다. 그 때 썼던 제 일기는 언제나 제게 힘을 주는 소중한 보물입니다.

삶을 살면서 우리는 항상 선택을 합니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 수학 문제 풀듯 정확한 정보와 가정을 바탕으로 이성적인 선택을 하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항상 이성적으로 선택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직관적으로, 주위 환경에 따라, 나의 가치관에 따라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쉽게도 이 사회는 성공한 사람들만 언론에서 영웅 대접을 해주기 때문에 우리는 마치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무슨 성공 공식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 그런 공식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나의 선택이 이런 결과를 야기한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분께서는 성공 또는 자기발전에 대한 열정이 크실 것 같습니다. 일찍부터 많은 것을 고민하고,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자기 피드백을 통해 자기가 살아온 인생을 끊임 없이 복습하시는 모습이 참 멋집니다. 질문하신 내용을 바탕으로 제가 어떤 조언을 하기엔 저는 너무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냥 질문 몇 가지를 추가로 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요즘 기계 전망이 정말 어둡나요? 저는 기계과에 다니고 있지만 회사에서 꾸준히 기계과 학생에 대한 수요가 있고, 교수 임용도 활발하게 하고 있고… 컴공이 대세고, 컴공을 나온 사람의 평균 연봉이 기계과보다 훨씬 높다는 얘기는 들었어도 기계과의 전망이 어둡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경제가 어려운 것은 맞지만 전반적으로 모두가 어려운 것이지 기계과만 어려운 것도 아니구요. 제조업 기반의 대한민국 산업 구조가 점점 변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기계과의 미래가 어둡다는 말에는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다행히 기계과도 변화를 합니다. 10년 전에는 기계과가 바이오/나노가 미래다 하면서 모두가 바이오/나노 연구를 했었고, 2-5년 전부터는 AI와 자율주행이 미래다 하면서 모두가 인공지능 쪽에 연구를 합니다. 기계과의 정체성이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저도 수도 없이 하지만 어쨌든 기계과 자체도 연구 트렌드에 맞춰서 변하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발전 방향은 훌륭하신 대학 교수님과 학교 관계자 분들이 고민하셔야 하는 부분이고, 학생분들은 열심히 공부를 하면 되시는 것이죠. 학생분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기계과가 과학/공학 전반적으로 영향력이 상당합니다. 유가 폭락, 조선업/플랜트/원자력 주가 폭락 등 한시적이고 표면적인 사실에 너무 휘둘리지 마시고, 기계과의 본질이 무엇인지 더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학생 분의 인생 목표는 무엇인가요? 설마 취업은 아니겠죠? 좀 후하게 쳐서 삼성전자 취업이면 성공한 인생일까요? 학생분께서 결국 기계과를 선택한 것도 당시의 높은 기계과 취업률 때문이라고 말씀하셨고, 지금 전자과로 전과를 고민하시는 것도 상대적으로 전자과의 매력이 높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기업에 취직해서 일하는 삶이 학생 분의 인생 최종 목표라고 하기엔 학생 분의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나요?

회사에서 일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 제가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사에서 나만의 전공을 발전시키며 사회에 이바지하고 안정적으로 가정을 부양하는 그런 삶 또한 너무 멋집니다. 다만, 질문하신 학생이 너무 진로의 기준을 취업률로만 잡는 것 같아 매우 아쉽다는 겁니다. 자신을 좀더 알고 세상을 좀 더 넓게 볼 수만 있다면 더 많은 기회가 있을텐데 너무 취업률이라는 변수 하나에만 휘둘리시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또한 전자과로 전과하신다고 해도 좋은 회사에 취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구요. 안타깝지만 지금 고민하는 선택지는 학생의 성공을 절대적으로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저는 지난 멘토링 수업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공무원을 준비하는 학생들, 트렌드에 맞춰서 분야를 바꾸는 기민함 등을 대단히 높게 평가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분야를 유연하게 바꾸면서 자기의 가치를 높이는 활동도 격려돼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항상 선택의 중심을 외부의 표면적 요소가 아닌 내재하는 가치관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학생 분의 선택에는 자기의 가치관이 얼마나 반영되어 있나요? 이 가치관은 단지 안정적인 취업을 통한 경제적 안정이라든가 사회적 명성이 아닙니다. 더 깊숙히 존재하는, 더 본질적인 가치는 무엇인가요? 무엇을 하실 때 가장 행복하세요? 무엇을 좋아하세요?

제가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냥 제 얘기를 조금 더 드릴테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저도 요즘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애플에서 일하는 것도 공학적으로 인류에 기여하는 바가 크고, 워낙 회사에 돈이 많아서 하고 싶은 연구도 쉽게 할 수 있고, 제 전공 분야에 대해 깊이 있는 탐구도 가능한 환경을 제공합니다. 돈도 많이 주고, 사람들의 평도 좋습니다. 캘리포니아 삶도 매우 좋고, 가족들도 매우 행복해 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면 제품에 활용되는 재료분야에 대해 어느정도 전문성이 갖춰질 것 같고, 훗날 저만의 회사를 차리던가, 다른 회사에 CTO로도 스카웃되거나, 교수로도 불러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저는 연구에 대한 흥미도 매우 많습니다. 현재 하고 있는 inorganic/organic composite 또는 bio-hybrid polymeric material 등 제가 하고 있는 연구분야도 너무 좋습니다. 더 공부하면 지구 상의 많은 플라스틱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기여할 수도 있고, 에너지/바이오 분야에서 인류가 가지고 있는 많은 과제를 해결해볼 수도 있겠죠. 또한 연구원이 아닌 교수가 되면 다사다난했던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좋은 선생이자 멘토가 되어줄 수도 있을 겁니다.

제 삶의 시간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만약 하나만 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도 정말 많은 고민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계속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행도 많이 다니구요. 회사에 대해서 더 많은 정보/문화를 알아야하니 회사일도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구요. 사람들의 얘기도 많이 듣구요. 그냥 강의만 적당히 찍고 파는 데에 그치지 않고 여러분과 이렇게 단톡방까지 자발적으로 만들어 하루에 4-5시간만 자면서 멘토링도 하고 모르는 문제도 풀어줍니다.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 컨텐츠도 많이 보고, 다른 블로그도 열심히 참조하고 있습니다. 가족들과 항상 같이 고민하면서 앞으로의 삶에 대해 함께 계획합니다.

제가 하고 있는 고민과 학생분께서 하는 고민이 그리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제가 후회없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을 더욱 치열하고 열심히 살면서 내게 질문하는 것처럼 학생분도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치열하게 고민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나치게 낙관적일 수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면 다른 부수적인 것들은 자연스럽게 따라 올 것입니다. 혹은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 속에서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여러 일들 중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도 있겠죠.

전과를 하세요. 인공지능이 대세에요.
기계과가 전망이 좋으니 그냥 열심히 공부하셔도 됩니다.

위와 같이 정답을 알려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저도 그냥 학생 분보다 그냥 몇 살 더 나이먹은 평범한 사람이고, 나이를 떠나 모든 사람의 인생은 소중한데 누가 누구에게 감히 조언을 하겠습니까. 어쩔 수 없이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기 위해 부끄럽지만 제 얘기를 공유드렸으니 참고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 강의를 좋아해주셔서 고맙고, 역학에 대해 재미를 느끼셨다고 하니 너무 감사합니다. 열심히 공부하셔서 학생분이 원하는 바를 꼭 이룰 수 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래의 영상은 기계과 또는 공대학생들을 위해서 대한민국 교수님들과 직접 멘토링을 했던 영상들입니다. 위의 내용과 함께 보시면 더욱 도움이 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Subscribe
Notify of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